김중태 컴퓨터 문화원 컬럼 (www.dak.kr) :
컴퓨터 통신의 세계(말 1995년 7월호)
컴퓨터 통신의 세계
통신을 통해 할 수 있는 일
내가 '멋'이라는 사설벼락쪽을 운영한지도 벌써 6년째다. 오랜 시간을 운영하다보니 그 사이에 입대했거나 외국에 유학 갔다 온 사람들이 아직까지 망하지 않고 남아 있는 '멋'에 다시 접속하면서 감회에 젖는 경우가 많다. 중고생이었던 어린 여학생들을 우연하게 만나면 어느새 어엿한 숙녀가 되어 있어 깜짝깜짝 놀라기도 한다. 이렇게 몇 년만에 아는 사람을 다시 만날 때의 기쁨과 반가움이란 얼마나 큰지. 이런 행복한 느낌을 받을 때마다 나는 통신을 하는 일이란 참으로 괜찮은 일이구나 하는 생각을 가진다.
통신을 통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정보를 검색하는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정보검색은 통신을 통해서 할 수 있는 중에서 아주 기본적인 일에 속한다. 정보를 좀더 편하게 검색하는 일이란 것이 따지고 보면 인간의 행복을 위한 수 많은 일 가운데 하나에 불과한다. 때문에 통신을 통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는 행복한 사회구현이다. 또한 통신은 자신이 지닌 꿈을 실현할 수 있는 훌륭한 도구다.
나는 통신을 통해서 자신의 꿈을 이룬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통신을 이용하면 문단에 등단하지 않고도 자신이 원하는 글을 쓰고, 사람들과 함께 자신이 쓴 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어떤 사람은 학교를 다니면서 통신을 통해 발표한 글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도 한다.
작년 한 해 초강세를 보였던 [퇴마록]의 이우혁씨는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 결과 '글이나 써서 돈 벌지. 박사공부는 왜 해.'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박사과정에 들어가지 못하는 아픔도 겪었다고 한다. 또한 인기작가로 인기를 누리는가 하면, 일본만화 '공작왕'을 본딴 일본문화수입의 앞잡이라는 비난도 감수해야 했다. 우리나라 귀신은 은원이 없는 사람은 해치지 않는 선한 귀신들인데, 퇴마록 때문에 선한 사람을 해치는 '악귀'라는 일본귀신문화가 널리 배포되었다는 것이다.
[퇴마록]과는 달리 통신에서 인기 절정를 달렸던 [장미 소나타]나 [비서일기]와 같은 많은 작품들은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해서 아쉬움을 남겼는데, 정작 작가들은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편하게 쓸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한다. 또 연극을 해보는게 꿈이었던 어떤 사람은 통신을 통해 알게 된 연극동아리를 통해서 마침내 연극무대에 서기도 한다. 연주회를 열거나 전시회에 자신의 작품을 전시한 사람들도 많이 보았다. 비록 빛나는 주연은 아니지만 몇 달을 연습해서 무대에 선 조연배우가 뒤풀이 장소에서 남몰래 흘리던 감격의 눈물을 본 적이 있다면 통신을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단순한 정보검색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집에서는 자녀가 통신을 시작한 뒤로 밤마다 통신만 하고 공부를 안한다고 야단이다. 그리고 통신을 한 이후로는 학교성적이 떨어졌다면서 옆집 부모들에게도 자녀들이 통신을 못하도록 말리는 분이 있다.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말리는 정도는 아니지만 '통신'을 하면 무조건 공부에는 방해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와 반대로 통신을 통해서 학교공부에서는 배울 수 없는 많은 간접경험을 쌓을 수 있다.
게시판에 글을 쓰다보면 논리와 문장력이 깊어지고 각종 프로그램과 글을 접하면서 많은 간접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공부에 더 도움이 된다 할 수 있다. 문제는 모든 일이 그런 것처럼 오로지 통신에만 매달릴 때 발생한다. 피아노 학원에 보냈더니 온 종일 피아노만 치는 경우와 같다. 결국 문제는 통신에 투자하는 정력을 어느 정도 선으로 적절하게 조절하느냐에 달린 것이지, 통신 자체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통신인을 괴롭히는 것은 비싼 전화요금과 사용료 이런 저런 매력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통신을 하고자 하지만 통신을 하기 위해서는 결코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간다. 연극 한 두 편 볼 돈도 없다는 사람들이 한 달에 몇 만원씩이나 하는 사용료과 전화요금을 부담하는 일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때문에 비용문제만 따진다면 옛날이 통신하기에는 훨씬 좋았던 셈이다.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있겠지만 1989년까지는 도수제라고 해서 시간에 관계 없이 무조건 한 통화였다. 그러니 비록 1200bps의 느린 속도라고 하지만 통신인들은 무척 신이 났다. 하루 종일 통화해도 한 통화니 한 번 접속하면 도대체 끊을 생각을 안했다. 밥 먹으러 갈 때도 접속중이고, 밤에는 파일을 무더기로 받게 해놓은 뒤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밤새 받아온 파일들이 하드디스크에 수북하게 쌓인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뿌듯함이란. 그래도 전화비는 몇 천 원에 불과했던 좋은 시절이다.
그러나 이렇게 전화비가 싸도 당시에는 일반인들이 인터넷이나 컴퓨서브 등에 접속하기 어려웠으므로 외국의 유명 통신망에 접속하기 위해서는 직접 국제전화를 걸어야 했다. 당시 한창 유행이던 모험놀이인 [Larry]의 설명서를 구하기 위해서 직접 시에라사에 접속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각종 유틸리티나 호스트프로그램, 백신을 구하기 위해서 외국에 접속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 덕분에 국내에서는 외국의 최신 프로그램을 받아볼 수 있었고 바이러스 피해도 많이 줄일 수 있었다.
물론 이들 중에 일부는 외국의 성인용 벼락쪽에 접속해서 음란사진들을 무더기로 받아오기도 했다. 그래서 이들 사진을 자료실에 올려놓고 회비를 받는 이른바 야동(야한 동아리)이라는 것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들을 본딴 학생들이 국제전화를 걸어서 접속하는 바람에 속내용을 모르는 부모들이 쓰지도 않은 국제전화비가 나왔다고 전화국에 항의하는 일도 잦았다.
그러나 서울의 통신인들이 저렴한 전화비로 통신하는 동안에도 지방통신인 중에는 수 십에서 수 백만 원의 전화비를 물면서 통신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 대부분의 쓸만한 벼락쪽들이 서울에 몰려 있었고, 대형통신망도 지금처럼 01410과 같은 전국적인 통신망용 회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다보니 비싼 전화비 때문에 패가망신하는 사람들을 가끔 본다. 아들놈이 컴퓨터를 배우겠다고 해서 기분 좋게 컴퓨터를 사주었던 아버님. 그러나 다음달 나온 전화요금을 보고는 '아니, 이눔이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통신으로 외국에 접속해?' 하면서 이층으로 달려와서 그대로 컴퓨터를 길바닥에 내던지는 사태가 종종 발생했다. 물론 지금도 이런 일들은 계속되고 있다. 혹시나 전화비가 생각보다 많이 나온다 싶은 부모들은 자녀들이 컴퓨터로 통신을 하는 것이 아닌가 관찰해볼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부모님이 통신하는 것을 인정하는 집에서는 '전화비는 부모님이 내니까' 하고 전화비 부담 없이 통신을 하는데, 이런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대형통신망의 편지함을 자신의 하드디스크처럼 사용한다는 점이다. 하드디스크에 프로그램을 새롭게 깔아야 하는데 하드디스크는 꽉 찼고, 따로 하드디스크나 플로피디스크를 살 돈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돈 없는 학생들은 자신의 하드디스크에 있는 프로그램을 모두 압축해서 하이텔이나 나우누리의 편지함에 보관해둔다. 요즘처럼 14400~28800bps의 고속모뎀 시대에는 한 시간에 5~10메가 이상을 통신으로 주고받을 수 있어서 이런 현상이 더욱 심해졌다. 하드디스크가 몇 메가 필요하면 이미 있는 파일을 압축해서 통신망에 올려놓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깔았다가 이전 프로그램이 필요하면 다시 편지함에서 꺼내 자신의 컴퓨터로 받아오는 수법인데, 이들 때문에 대형통신망들의 하드디스크가 수난을 당한다.
하드디스크 부족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몇 기가 짜리 하드디스크를 새롭게 달아도 하루만에 하드디스크가 꽉 차는 사태가 발생하곤 한다. 물론 그 이유의 상당수는 큰 덩치의 프로그램을 편지로 주고받거나 보관함에 보관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하이텔 등에서는 문서파일이 아닌 기계어파일의 편지중개기능을 없애버렸고, 동아리에 보관할 수 있는 자료의 양을 제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멋모르고 통신하는 이들이 한 번 된통 당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특히 초보시절에 멋모르고 통신하다가 엄청나게 나오는 사용요금에 넋을 잃고 하늘만 바라보는 친구들을 가끔 본 적 있다. 주로 이런 경우는 종량제를 기본으로 삼고 있는 천리안 사용자들에게서 자주 발생한다. 하이텔이나 나우콤 등은 정액제이기 때문에 한 달에 만 원 정도면 충분하다. 물론 종량제로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도 있지만 이런 곳은 분 당 얼마를 받는다고 표시되기 때문에 잘 사용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런 서비스를 사용하지 않아도 천리안의 이용요금이 백만 원 이상 나오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대부분 보관함을 하이텔이나 나우누리처럼 이용한 경우다.
요즘도 천리안에서는 보관함에 편지나 프로그램을 보관할 경우 1천 자 당 하루 9원을 받는다. 1천 자라고 해봐야 1Kbyte 정도이므로, 1024Kbyte인 1메가를 보관하면 하루 9천원의 요금이 부과되는 셈이다. 1메가의 파일만 한 달 정도 보관해도 대충 30만원 가까이 나오는 셈이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잘 모르는 초보자들은 자료실에서 받은 게임이나 친구들이 보내준 게임을 일단은 모두 보관함에 저장해둔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서 나오는 몇 백만 원 짜리 고지서를 보고는 놀라서 뒤로 자빠질 수밖에. 결국 부모님이 전후사정을 듣고 난 뒤에는, '아니, 이눔이 통신으로 정보를 찾아보고 공부한다더니 게임이나 받아?' 하면서 방에 있는 컴퓨터를 박살내는 경우가 발생한다. 천리안을 사용하거나 사용할 사람들이 특히 조심해야 할 대목이다.
통신을 오래 한 사람들도 프로그램을 무심코 보관실에 저장한 뒤에 까먹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되면 말 그래도 생돈이 나가는 경우를 당하게 된다. 가능하면 편지 등을 받아본 뒤에 '저장할까요?'라는 말이 나오면 무조건 'N'을 치는 습관을 길들이는 것이 좋다.
통신을 통한 만남들
돈 문제로 통신을 그만 두는 비극적인 사태만 발생하지 않는다면 대부분은 특별한 곤란 없이 통신을 계속하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통신을 오래 하다가도 사람들에게 실망하게 되면 통신을 그만 둔다. '복불복'이라고 하던가? 좋은 사람을 만나면 통신이 그만큼 즐겁고 행복할 것이고, 나쁜 사람들을 만나 안 좋은 일을 당하면 통신이 소름 끼치도록 싫어질 것이다. 물론 이런 일은 통신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고, 어떤 모임이나 어떤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므로 통신인이라고 해서 모두 좋은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각양각색의 사람이 몰려 사는 곳이기 때문에 다른 사회처럼 각종 사기와 범죄가 숨어 있는 곳이 통신세계다. 물론 애절한 슬픔과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도 있고, 입가에 웃음이 저절로 맺히는 따스한 사연들도 있다.
김보은양 사건을 알려서 전국적인 공론을 불러일으킨 일은 같은 학교 다니던 한 통신인이 통신으로 알려 시작한 일이었다. 병에 시달리는 한 여성을 위해서 수 많은 사람들이 약과 돈을 모금해서 전해준 따스한 사연도 있다. 외국에서는 자살하기 전에 남긴 게시판의 글을 보고 몇 백 키로미터나 떨어진 사람이 연락해서 자살기도자의 생명을 건졌고, 다시 살아난 이 사람은 세상은 살만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 일도 있다.
언젠가는 내가 운영하는 [멋]에도 한 아가씨가 자살하겠다고 글을 올린 적이 있어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결국 이 아가씨와 글판을 두드리면서 밤새 대화를 한 끝에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위로해준다고 함께 영화까지 본 일이 있다. 원래 감상적이던 이 아가씨는 사랑하는 남자와 헤어져서 마음이 너무나 울적했고 밤이 전해주는 분위기 때문에 글을 쓰다가 스스로의 감정에 몰두해서 자살충동을 느낀 것이다. '한글님, 저 지금 죽으러 갈테니 와서 제 신발이나 챙겨주세요.'라고 말할 때는 얼마나 당황스럽던지. 애인을 피해서 달아난다면서 독일로 떠난 그 아가씨가 지금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사랑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통신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는 일 가운데 하나는 이성에 대한 관심이다.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야 직장이나 학교나 어디서나 늘 최고의 관심사이므로 통신에서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특히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보검색보다는 대화방에서 사람을 만나 대화하는 일을 더욱 좋아한다. 통신인 중에 상당수는 정보를 검색하는 일보다 모임이나 동아리 사람들을 만나 술마시고 노래방에 가는 일을 더욱 좋아한다. 음주가무를 좋아하는 우리 겨레의 특징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왕자병, 공주병과 같은 각종 병에 걸린 인간들도 많이 등장한다. 특히 아직까지는 여성비율이 적기 때문에 공주병환자들이 왕자병환자보다 많은 편이다. 이런 공주병환자의 상당수는 추잡스러울만큼 집요하게 치근대는 늑대들 때문에 생겨난다. 통신망의 대화방에는 눈빛을 빛내는 늑대들이 호시탐탐 여자들에게 접근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 이 때문에 어지간한 여성통신인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초청장을 받는 일을 당한다. 이때문에 여자이름 같은 이름을 가진 남자들은 늘 곤혹스럽다. 초청받고 들어가서 '저는 남자인데요.'라고 밝히면 오히려 상대방이 화를 내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남자이름 같은 여자들은 자신들은 초청받아본 적이 없다고 '다 내 이름 탓이오'하면서 농담처럼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한다.
통신을 통해서 이성교제를 하고자 할 때는 어느 정도의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 얼굴도 목소리도 들을 수 없으니 대화방에서 속여도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한 여대생은 남자대학생이라고 밝힌 사람과 대화방을 통해서 사랑의 감정을 키우다가 나중에 만나서 확인해보니 국민학생이어서 충격받은 일이 있다. 또 통신을 통해서 사귀던 남자대학생과 결혼하겠다는 여대생의 집안에서 남자의 신상을 확인해본 결과 백수건달로 밝혀져 집안이 발칵 뒤집어지는 사건도 있었다. 물론 이런 부정적인 일보다는 통신을 통해 만나 결혼한 뒤에 행복하게 잘 사는 일들이 훨씬 많다.
통신커플의 결혼이야기는 상큼하면서도 입가에 훈훈한 웃음이 감돌 정도로 따뜻하다. 집안에 컴퓨터도 두 대, 전화번호도 두 개. 그리고는 밤만 되면 서로 자기전화번호로 통신망에 접속해서 대화방에서 잉꼬부부를 과시하기도 하고 부부싸움을 하기도 한다. 한창 대화방에서 이야기 중에, '뭐야? 당신 이 방으로 와 봐요.'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흥, 당신이 건너와요.'하는 이야기가 나와서 어리둥절해 하는 사람들이 물어보면, 서로 옆 방에서 대화중이라거나 책상을 나란히 하고 대화중이라고 해서 웃음을 짓곤 한다.
하여간 이성에 대한 관심은 지구 역사가 계속되는 한 늘 첫번째 관심사일 것이다. 자료실이나 게시판에는 누가 얼마나 봤는가를 나타내는 조회수가 나타나는데, '이것 조금 야해요.' '성인용입니다'와 같이 '야'자나 '성'이라는 글자만 들어가도 앞뒤의 게시물에 비해 열 배 이상의 조회수를 보여준다. 야한 것과 이성에 대한 관심은 통신세계에서도 변함 없이 제일의 관심사라는 것을 입증하는 보기다.
이러다보니 이를 이용한 사기도 가끔 나온다. 땅이 넓은 미국에서는 한 여성이(진짜 여자인지도 알 수 없지만) 상대방 남자를 보고 싶은데 돈이 없다면서, 비행기삯을 보내주면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만나고 싶다는 수법으로 수 십 명의 남자들한테서 비행기삯을 턴 사건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국적이 다른 두 남녀가 인터넷 등을 통해서 편지를 주고받다가 결혼하는 경우도 자주 본다. 어디서나 늘 그렇지만 두 사람이 만나 결혼하는 모습을 보면 함께 행복을 느끼지만, 사랑의 충격으로 시름시름 앓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다. 때문에 앞으로 통신을 하는 모든 사람은 사랑에 실패하기보다는 행복한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누구나 도움받을 수 있는 곳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보니 사람들은 통신을 통해 많은 도움을 주고 받는다. 나도 통신을 통해서 많은 도움을 받았고, 조그마한 도움을 남에게 베풀기도 한다. 요즘도 가끔 아는 통신인이 사무실이나 집으로 전화를 한다. 안부전화도 있고, 뭘 물어보는 내용도 있고 어떤 일을 부탁하는 전화도 있다. 그리고 이분들 덕분에 나는 가끔 지방 특산물을 맛있게 잘 얻어먹기도 한다. 몇 달 전에도 제주도에 사는 분이 전화를 해서 국문학 세미나 자료를 좀 구해줄 수 없냐고 부탁을 했는데, 나로서는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라서 다음날 세미나하는 곳에 가서 자료를 구해 보내주었다. 그분에게는 그 자료가 무척이나 필요한 자료였고 지역적으로 너무 멀어서 어떻게 할 방법이 없던 차에 나를 기억해내고 내게 잠시의 수고를 부탁한 것이다. 자료를 보낸 후 얼마 뒤에는 감사의 뜻으로, 제주도로부터 맛있는 귤이 한 상자 올라왔다. 덕분에 나는 그 전 주에 또 다른 분으로부터 받은 울릉도오징어와 함께 며칠을 포식한 즐거운 기억이 있다.
또 언젠가는 보험회사에서 보험금을 주지 않는다는 한탄의 글을 게시판에서 보고 보험금을 탈 수 있다고 편지를 보낸 적이 있는데, 그 덕분에 다시 힘을 내 결국은 보험금을 탈 수 있게 되었다면서 모임에까지 나와 감사의 말을 전하던 분도 있었다. 내가 볼 때는 별 것 아닌 일이나 자료도 그 분야에 문외한인 사람들이 볼 때는 매우 절실한 도움이고 자료일 수 있다. 그리고 통신이 좋은 점은 이런 경험을 나누며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각양각층의 사람들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다보니 자신이 무엇인가 절실하게 필요로 할 때 도움을 요청하고 해답을 얻을 수 있는 곳이 통신세계다. 법률에 대해서 문외한인 사람이라면 법률동아리에 글을 한 자 올려보라. 꼭 해답을 얻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경험을 남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기대 이상의 결과를 얻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의외로 통신을 통해서 도움을 얻는 경우는 많다. 보통의 사회에서는 도움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없거나 기회제공조차 없지만 적어도 통신세계에서는 누구나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생각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주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가끔 자료실에 올라오는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슬며시 웃을 때가 많다. '이것 컴퓨터 켤 때 꼭 필요한 것이래요.'하면서 'command.com'파일을 올리거나, '도스의 cd 명령어보다 무척 편해요. 꼭 써보세요.'라고 하면서 노턴유틸리티에 들어 있는 'ncd.exe' 프로그램을 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컴퓨터와 통신에 초보이기 때문에 이런 프로그램들을 올리는 것이지만, 이들을 보면서 나는 아직도 세상은 따스한 사람들이 더 많구나 하는 행복한 느낌을 받는다. 만약 이런 프로그램을 올린 사람들에게 '멍청하게 남들이 다 쓰는 것을 올린다'고 핀잔을 주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이야말로 통신에서 사라져야 할 사람이다. 적어도 'command.com'을 올리는 사람은 남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올리는 따스한 가슴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통신세계는 컴퓨터전문가보다는 남을 위하는 마음을 가지는 사람으로 가득차야 한다. 그리고 적어도 아직까지는 이런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통신은 참으로 할만한 일이라고 남들에게 이야기한다. 사랑이 넘치는 통신,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 서로 돕는 통신세계를 꿈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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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벼락쪽: BBS(Bulletin Board System)의 한글말로 전자게시판, 또는 통신망이라고도 한다. 개인이 운영하는 곳을 사설벼락쪽이라고 하고 큰 회사에 운영하는 곳을 대형벼락쪽이라고 한다.
-- bps: 통신에서 사용하는 속도의 단위 중 하나. Bit Per Second의 줄임말로 1초에 몇 비트를 보내는가를 재는 단위다.
-- 대화방: 통신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의 하나로, 타자를 쳐서 보내는 글로써 이야기를 나누는 서비스를 말한다.
-- 모뎀: PC로 통신을 할 때 사용하는 주변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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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PC통신과 PC통신을 이끄는 사람들
PC통신을 이끌어가는 축들
흔히 말하는 통신이라고 하면 PC통신을 말하는데, PC를 이용해서 파일이나 편지를 주고받거나, 대화를 나누며 정보를 검색하는 일을 말한다. 이때 접속하는 통신망을 보통 BBS(Bulletin Board System)라고 부르는데, 한글말로는 벼락알림쪽, 줄여서 벼락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국피씨통신에서 운영하는 하이텔이나 데이콤에서 운영하는 천리안과 같이 수십만 명이 사용하는 곳은 대형통신망 또는 대형벼락쪽이라고 부르고, 개인이 집에서 운영하는 통신망을 사설비비에스 또는 사설벼락쪽이라고 부른다.
이런 통신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몇 가지 구성요소가 필요한데, 먼저 통신장비로는 PC와 모뎀이라는 기계가 필요하다. PC가 없을 경우에는 단말기를 이용하면 되는데, 단말기는 전화국에서 공짜로 빌려주므로 주민등록증만 가지고 가서 신청하면 된다. 그리고 접속을 위한 접속프로그램(에뮬레이터라고 부른다)과 파일을 주고 받기 위한 프로토콜프로그램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이들을 갖추면 보통 호스트컴퓨터가 설치된 통신망에 접속을 하는데, 호스트컴퓨터를 돌리는 프로그램을 호스트프로그램이라고 부르고, 호스트컴퓨터를 관리하는 사람을 운영자나 지기라고 부른다.
통신문화의 구성요인은 무척이나 많지만 통신문화를 이끌어나가는 중심으로는 아무래도 동아리지기와 벼락쪽지기들이 큰 축을 차지한다. 요즘에는 지기라는 한글말을 주로 사용하지만 통신 초창기에는 '시솝,시삽,시샵,시숍,운영자,임자,으뜸빛,족장,촌장,대장...'과 같은 표현이 혼란스럽게 사용되었다. 영어로 SYSOP이라고 하는 이 말은 System Operator의 줄임말로 한글로는 '시솝'으로 표기한다. sysop을 발음대로 옮기면 '시솦', 외래어표기법에 따르면 '시솝'이라고 써야 하지만 초기에는 '시삽'이라는 표현을 많이 썼고 지금도 이 표현을 많이 쓴다. 그 이유는 당시 사용하던 7비트 청계천한글코드에는 '솦'이나 '샾'이라는 글씨가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솦/시솝'대신 '시삽'을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요즘 사용하는 '지기'라는 말의 사용에는 뚜렷한 유래가 있다. 이 낱말은 내가 [멋]벼락쪽을 운영하면서 시행했던 한글통신용어 공모전에 한 중학생이 응모한 낱말이다. 그전까지 나는 '시솝'이라는 말 대신에 '임자'라는 말을 썼는데, 한 중학생이 ' 등대지기, 문지기처럼 지기라는 말을 사용하는 게 어때요?'라고 의견을 보내왔다. 나는 이 말을 듣고 '관리자/운영자'라는 뜻으로 '지기'라는 말이 참으로 적절하다고 생각했고 그때부터 이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요즘 사용하는 '나우지기/모임지기/동아리지기'와 같은 낱말은 한 중학생의 한글사랑으로 탄생한 말인 셈이다.
호스트 프로그램에 얽힌 문제들
사설벼락쪽 지기들이 가장 골머리를 싸매는 문제는 호스트프로그램의 선정과 운영이다. 통신 초창기에 가장 많이 사용했던 호스트프로그램은 미국에서 만든 들고양이(Wildcat)와 RBBS라는 프로그램이다. 이들 프로그램은 기능 면에서는 나무랄 데가 없었지만 한글문제가 늘 걸렸다. 예를 들어서 들고양이 프로그램의 경우 파일설명을 달 때 한글을 사용할 수 없는 약점이 있었다. 이 때문에 조금 친절한 벼락쪽지기들은 사용자들이 영어로 단 설명을 pctools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섹터에디팅 작업을 해서 한글로 고쳐주고는 했는데 이 일은 생각보다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이런 식으로 벼락쪽을 운영하다보니 열성적인 벼락쪽지기들은 하루에 몇 시간 씩 호스트 운영에 매달려야만 했다.
그 외에도 호스트프로그램이 가지는 문제는 무척 많았다. 예를 들어서 [멋]의 경우 사용자 등록이 1만 명을 육박하면서 사용자 자료와 편지 자료만 20메가바이트를 넘기고 말았는데, 들고양이 프로그램은 필요 없는 편지를 지우는 기능이 없어서 자료보관에 무척 애를 먹었다. 당시에는 하드디스크의 가격이 비쌌는데, 40메가 하드디스크면 약 40만원이 넘었으므로 하드디스크를 증설하는데 필요한 돈을 마련하는 것도 큰 부담이었다. 더구나 100메가 정도 되는 자료를 매번 100 장의 플로피디스크로 여벌받는 일도 상당한 고민거리였다.
이 때문에 막강한 기능을 가진 호스트프로그램의 도입이 계속 추진되었다. 90년에 새롭게 도입한 것으로는 '언티'와 '텔레가드'라는 호스트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언티'는 잡지에 소개까지 되었다가 국내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당시 이 프로그램을 둘러싸고 벼락쪽지기들의 갈등이 있었는데, 결국 한 개인의 욕심을 위해서 들러리로 스쳐지나가는 프로그램이 되고 말았다. 텔레가드는 지금까지 내가 본 호스트프로그램 중에서는 가장 막강한 기능을 가지고 있는 제품으로, 하이텔이나 천리안과 같은 대형통신망에서 이 프로그램의 기능을 많이 본땄으면 하고 바라는 제품이다. 예를 들면 동아리나 게시판의 사용권한을 성별이나 나이별로 조정하는 것도 가능하며, 특정인만 사용하도록 하는 것도 가능하다. 텔리가드는 이처럼 막강한 기능 때문에 여러 지기들에게 환영받았지만 사용법을 익히기가 너무나 어렵고, 여전히 한글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한국형호스트의 개발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그래서 등장한 국내 최초의 호스트프로그램이 '카페'다. 이 프로그램은 국산 호스트프로그램의 개발을 돕기 위해서 소스를 공개했는데, 오히려 이 소스를 분석한 해커들의 침입을 많이 받기도 했다. 또한 이 프로그램은 지방통신인을 기준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치명적인 약점을 하나 지니고 있었는데, 등록가능 인원이 300명으로 제한된다는 사실이다. 사실 당시만 하더라도 지방의 통신인구는 몇 십명을 넘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300명이면 적은 인원이 아니었다. 90년도만 하더라도 마산이나 여수 같은 곳의 통신인구가 열 명을 넘지 않던 시기였다. 그러나 서울의 유명 벼락쪽들은 신규등록자만 일주일에 3백 명을 넘어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서울에서는 이 프로그램이 별로 쓰이지 못하고 사라졌다. 당시 이 프로그램을 사용하던 내일(SF)과 같은 벼락쪽에서는 매일 매일 등록된 회원을 지우는 웃지 못할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의 소스를 기본으로 해서 기능이 보강된 호스트프로그램이 속속 개발되기 시작했다. 특히 실질적으로 국산호스트 시대로 접어들기 시작한 것은 알파라는 벼락쪽에서 만들어 내놓은 '호롱불'이다. 이 프로그램은 최오길님이 만드셨는데, 이분은 컴퓨터언어는 물론 컴퓨터에도 거의 문외한이나 다름 없던 분이다. 더구나 혈기왕성한 학생들도 아니고 의류업을 하는 평범한 중년의 아저씨가 컴퓨터프로그램을 배워서 만들었다는 점에서 나로서는 매우 놀라운 일이었고 최오길님이 존경스럽게 보였다. 최오길님도 다른 사람처럼 우연하게 통신을 접하게 되었고, 통신을 하면서 국산호스트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프로그래밍에는 문외한인 이분이 파스칼이라는 프로그램언어를 배워가며 조금씩 짜기 시작해서 사람들에게 선을 보인 것이 호롱불이다. 지금은 너무나 편하게 사용하는 호롱불 호스트가 이처럼 나이 든 분의 작은 열정과 소망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매우 감동적이다. 안타까운 일은 호롱불을 이용해 국내에서는 최초로 전국적인 사설네트워크를 구성했는데, 호롱불네트의 중앙국인 알파1과 알파2의 두 남녀지기끼리 결혼한 후로는 예전만큼 열정을 쏟을 수 없어서 지금은 호롱불네트의 기능이 중단되었다는 사실이다.
벼락쪽 지기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는 프로그램이 호스트프로그램인지라 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는 이 외에도 숱하게 많다. dBANK라는 멀티노드 호스트프로그램(여러 사람이 동시에 접속할 수 있는 호스트 프로그램)을 짠 분은 정재덕님인데, 이분이 호스트프로그램을 짜게 된 동기도 별스럽다. 당시 정재덕님은 멀티노드로 벼락쪽을 운영하기 위한 호스트를 알아봤는데 상업용 들고양이 프로그램이 멀티노드를 지원한다는 것을 알고, 그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곳을 찾아갔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사람이 말하기를 자신이 이 호스트프로그램을 복사해줄테니 돈을 몇 십만원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 돈이면 새 제품을 살 수 있는데 국내에서 구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디스켓 몇 장 복사해주면서 돈을 몇 십만원 요구하는 그 사람에게 정나미가 떨어져서 직접 호스트를 짜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쉽게 말하면 열받아서 직접 짜기로 한 셈이다. 그러면서 들고양이 프로그램의 새로운 판이 미국에서 나왔다고 하면 국제전화비를 물면서, 직접 미국의 무스탕사에 접속해 파일을 받아오기도 했다. 물론 이렇게 몇 십만 원을 투자해서 가져온 프로그램은 통신인들에게 무료로 제공되었다.
이렇게 이런저런 이유로 수 많은 국산호스트가 개발되기 시작했고, 사설벼락쪽의 호스트는 카페와 호롱불이 나온 이후로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현재는 수 많은 기능이 구현되고 한글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되었기 때문에, 91년부터 사설벼락쪽에서는 영문을 한 자도 치지 않고 모든 기능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대형벼락쪽의 호스트는 아직도 많은 문제를 지니고 있다. 하이텔의 전신인 케텔 시절에는 차림표 하나를 바꾸는데 며칠에서 몇 달을 기다려야 했는데, 그 까닭을 나중에 알아보니 차림표 하나를 바꾸기 위해서는 케텔의 방대한 호스트프로그램을 전부 다시 컴파일(프로그램을 짜서 실행가능하도록 바꾸어주는 작업)해야 했기 때문이다. 차림표 하나 바꾸는데도 그 방대한 호스트프로그램을 매번 새롭게 컴파일해야 했으니 정말 기가 막힌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접속프로그램의 상업화
호스트와 마찬가지로 접속프로그램 역시 처음에는 외국 프로그램을 대부분 사용했다. 크로스토크와 같은 외국 프로그램을 사용하다가 엠팔의 반란, 한토크, 인토크, 따르릉, 이야기 프로그램이 나왔다. 호스트프로그램도 한글이 지원 안되고 접속프로그램에서도 한글을 구현하기가 어렵다보니 자연적으로 콩글리쉬가 많이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서 'How about you?'라는 말 대신에, 'Jal JiNaeSiJyo?' 'You OK?'와 같은 표현으로 서로 의견을 나누곤 했다. 한글은 못 쓰고, 영어실력은 짧고. 이 때문에 당시 콩글리쉬는 무척이나 유용한 통신언어였다. 요즘처럼 한글구현이 완벽한 상황에서는 조금 상상하기 힘든 풍경이라 하겠다. 이야기가 나오기 전까지 가장 많은 인기를 끈 접속프로그램은 인토크였다. 이 프로그램은 최초로 한글을 내장한 접속프로그램으로, 접속프로그램의 한글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되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인토크를 사랑했다.
따르릉이라는 프로그램은 공개용이 아니라 돈을 받고 파는 상업용이었는데 결국 판매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판매가 실패로 돌아간 이유는 제품이 나빠서가 아니었다. 기능도 좋고 디자인도 좋다고 사람들에게서 칭찬을 받았지만 제품을 구입할 수 있는 길이 너무 어려웠기 때문에 판매에 실패를 한 것이다. 지금이야 어지간한 컴퓨터 가게나 서점에서도 프로그램을 살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프로그램의 판매망이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에 통신판매로 구입하거나 사용자가 직접 찾아가서 사야했다. 당시만 해도 은행에 가서 돈을 내고, 제품을 주문하는 통신판매 제도가 생소하고 번거로웠기 때문에 제품의 성능에 비해 판매는 부진을 면치 못한 것이다. 그에 비해 이야기는 6.0판으로 판매를 시작할 때 엄청난 양을 미리 통신으로 예약주문 받았으니, 역시 돈을 벌기 위해서는 때를 잘 타는 것이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가장 큰 문제는 시간과 돈 문제
정확하게 나누어진 것은 아니지만 보통 1988년부터 1990년까지의 시기를 통신 초창기로 잡고 있다. 초창기시절의 열악한 통신환경이야 이루 말할 수가 없지만 당시에도 좋은 점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전화요금이다. 1989년까지는 전화요금이 도수제를 채택하고 있었는데, 이때까지 아무리 오래 통화해도 무조건 한 통화이던 시기다. 이 때문에 통신인들이 통신망에 한 번 접속하면 도무지 끊을 생각을 안했는데, 밤새 파일을 받도록 해놓고 잠이 들고는 했다.
이로 인해 대형 통신망의 경우 과부하가 걸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리고 전화선 하나로 운영하는 사설벼락쪽에서는 사용시간에 제한을 둘 수밖에 없었다. 사설벼락쪽의 경우 전화선 하나로 운영하기 때문에 하루에 접속할 수 있는 회원의 수가 한정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서 한 사람이 20분씩만 쓴다고 해도 한 시간에 3명 밖에는 접속할 수 없고, 24시간을 운영하는 곳도 하루 평균 60여명 정도만 접속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인기가 있는 곳은 한 두 시간 정도를 계속해서 접속을 시도해야만 겨우 접속할 수 있다. 물론 접속프로그램에 자동걸기라는 기능이 있어서 통화중일 때는 자동적으로 다시 재접속을 시도한다.
지금도 하이텔이나 나우누리와 같은 대형통신망들은 접속인원이 늘어나면서 생기는 과부하로 고생하고 있는데, 사설벼락쪽 역시 이런 고민은 마찬가지다. 내가 운영하는 [멋]에서도 이런 문제가 발생했는데, 사용자들이 늘 접속해 있기 때문에 정작 [멋]에 접속해야 할 동아리지기들이 일주일 내내 접속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이 때문에 결국 [멋]에 있는 동아리를 케텔로 옮긴 후에는 동아리를 폐쇄하고 말았다. 지금 하이텔에 있는 연극동이라는 동아리가 당시에 [멋]과 [홍익동] [씨알의 소리]라는 세 벼락쪽에서 공동으로 운영하던 동아리였는데, 91년 가을에 케텔로 옮겨서 전국적인 활동을 펴기 시작했다.
회선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사설과 대형통신망 모두에게 늘 고민거리다. 회선문제와 함께 벼락쪽지기들이 가지는 고민거리는 회원들이 올리는 자료의 검색과 게시물 감시다. 이 역시 대형통신망과 사설벼락쪽의 공통된 문제점이다. 무수히 올라오는 각종 파일의 바이러스 감염여부를 검사하는 일이나 음란자료를 검색하는 일은 지기들의 몫이다. 1%의 나쁜 통신인 때문에 바이러스 피해를 당하는 곳이 계속해서 속출하곤 했다. 또 회원들은 어쩌다 한 번씩 보내는 편지지만 지기들은 하루에도 수십 통씩 오는 편지를 읽고 답장을 써주어야 한다. 결국 벼락쪽지기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늘 시간이 부족하 다는 사실이다.
벼락쪽지기들만큼이나 통신초보자들도 시간문제로 인해서 큰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하이텔에서는 사용시간이나 편지함에 보관한 편지의 양에 상관 없이 한 달에 9,900 원만 내면 된다. 그러나 천리안에서는 편지함에 자료를 보관할 경우 글자 수와 보관시간을 따져서 요금을 물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런 요금계산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하이텔을 사용할 때처럼 몇 메가씩이나 되는 자료를 자신의 보관함에 한 달 내내 보관하는 경우를 가끔 본다. 그리고 나오는 사용료는 무려 200만원. 사용료가 100만원 이상 나왔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만 몇 명을 봤는지 모른다. 만약 통신초보자가 통신을 시작한다면 제일 먼저 이용요금을 계산하는 법부터 정확하게 알아두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첫 달 사용요금으로 몇 백만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요금을 내야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간 문제와 함께 돈문제 역시 벼락쪽지기들에게는 큰 부담이다. 대형통신망의 경우 회선증가에 대비해서 피라밋과 같은 대형기종을 계속해서 도입해야 하고, 저장장치와 회선증가 작업을 꾸준하게 추진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사설벼락쪽도 계속해서 용량을 증가시켜 주어야 한다. 하드디스크를 교체해주고, 기계와 모뎀을 교체해 줄 때마다 몇 십만 원의 경비가 소모되는데, 이 경비는 모두 벼락쪽지기 개인의 돈으로 충당되기 마련이다.
또 각종 운영비용도 의외로 많이 든다. 요즘은 인터넷이나 컴퓨서브에 쉽게 접속할 수 있지만 예전에는 이들 통신망을 이용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많은 벼락쪽지기들이 직접 외국에 접속해서 각종 프로그램을 받아와 회원들에게 공급하기도 했다. 물론 어떤 사설 벼락쪽에서는 백신 프로그램을 받아오는 것이 아니라, 외국의 음란자료를 받아와서 회원들에게 회비를 받으면서 이를 배포해주기도 했다. 이른바 야동이라고 하는 동아리들인데 현재는 이런 동아리들이 많이 사라진 상태다. 이런저런 전화비용과 각종 운영비용을 계산해보면 나름대로 꾸준하게 운영하는 벼락쪽의 경우 보통 500~1,000 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들어간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벼락쪽지기들이 이런 시간비용과 경제비용을 회원들에게 부담시키지는 않는다. 그들은 대부분 통신인들이 왕래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을 자신이 마련해준 것만으로도 만족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돈을 내고 사용하는 대형통신망에서는 통신회사에게 많은 것을 요구할 수 있지만, 사설벼락쪽을 사용할 경우에는 정말 올바른 예의범절과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용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조그마한 공개프로그램과 게시판의 글 하나까지도 실은 많은 사람들의 땀으로 이루어져 오늘 이른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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