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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포럼] 新세습사회
2015.02.16 17:27 2015.02.16 19:41
포브스가 지난해 말 선정한 세계 각국 10대, 50대 부자 명단을 보면 씁쓸하다. 미국 일본 대만 등은 자수성가 창업자 비율이 높은 반면 한국은 상속자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서다. 한국 10대 부자 명단에 창업자는 한 명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50대 부자 가운데도 창업자는 12명, 상속자는 38명으로 창업자 비율은 24%에 불과하다. 미국 일본 대만은 창업자가 각각 70%, 80%, 62%를 차지한다. 이는 대한민국이 창업이라는 계층이동 사다리가 잘 작동하지 않는 비역동적인 사회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회계층 간 이동이 가장 자유로운 나라로는 단연 미국이 꼽힌다. 그러나 미국도 예전의 미국이 아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신호에서 미국이 아메리칸 드림이 사라지고 대선 후보마저 대물림하는 '신귀족주의(New Aristocracy)' 사회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부와 권력, 성공이 출생에 의해서가 아니라 능력에 따라 결정되는 '기회의 땅'으로 인식됐지만 이제 그 기회가 없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미국을 지배해온 것은 시험실력주의(testocracy)였으나 엘리트들은 자녀들 교육에 막대한 돈을 투자하는 방법으로 시험을 거쳐 부와 권력을 대물림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숀 리어던 스탠퍼드대 교수는 부모의 소득과 자녀의 SAT 시험 점수 사이에 분명한 양의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 폴 라이언 미국 하원의원은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미국 사람들이 '태어날 때 조건이 나머지 삶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것"이라고 염려를 표명했다.
미국 정치권은 기회균등이 깨지는 데 대해 걱정하고 있지만 한국은 그런 움직임도 없이 미국보다 더한 신귀족주의가 빠르게 자리 잡아가고 있다. 과거에는 가난해도 공부만 잘하면 명문대를 졸업해 직장을 잡거나 고시를 통해 인생역전이 가능했다. 그러나 '개천에서 용 나던 시대'는 멀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계층이동 사다리였던 사법시험도 2017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로스쿨이 이를 대체하게 되지만 3년간 학비와 생활비가 1억원 넘게 들어가기 때문에 서민층이 법조계에 진입하기는 사실상 힘들어지게 됐다.
부와 가난의 대물림이 심화되는 것은 신분 상승 사다리인 교육제도 기능이 갈수록 약화되고 취업이 힘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엘리트일수록 학벌, 지위를 대물림하기 위해 자녀 교육에 많은 돈을 투입하고 있다. 국내 기득권층은 '영어유치원-사립초-국제중-특목고' 트랙을 밟으며 사교육비를 쏟아붓고 있다. 지인 중에 과학고 2학년에게 1년간 매달 사교육비로 1500만원을 썼다는 사람도 있다.
대학 입학은 사교육비 액수가 좌우하고 있다. 2015학년도 서울대 수시모집 전형에 합격한 서울 일반고 출신 중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 3구가 40%를 차지한 것만 봐도 그렇다. 중산층도 사회적 지위가 하락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자녀 교육에 과다하게 투자하면서 삶의 질이 뒷걸음질치고 있다. 그러나 상류층과 교육비 격차가 갈수록 커지니 당해낼 재간이 없다. 교육이 결국 '쩐(錢)의 전쟁'으로 변하고, 엘리트의 자식이 엘리트가 되는 지위 세습이 가속되고 있다.
대입도 수시입학 전형이 70%로 확대되면서 스펙을 쌓거나 논술학원에 다닌 고소득층 자녀들에 훨씬 유리한 구조다. EBS 교재를 붙잡고 죽어라 공부해도 수능 위주 정시전형은 30%밖에 안 돼 합격하기가 쉽지 않다. 수시는 미국 입학사정관제를 모티브로 한 것이지만 미국에서도 비판이 많다. 대니얼 골든은 '왜 학벌은 세습되는가'라는 책에서 미국에서 입학사정관제는 상류층 자녀를 위한 VIP 초대장으로 기능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무조건 미국을 따를 게 아니라 정시 비중을 대거 늘려 허물어진 교육 사다리를 바로세우는 것이 시급하다.
저소득층이 빈곤에서 벗어나 중산층이나 고소득층으로 이동하는 빈곤 탈출률은 지난해 22.6%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교육과 창업을 통해 엘리트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사라진 사회의 미래는 어둡다. 재벌들의 부의 세습에 이어 대기업 귀족노조까지 일자리를 세습하겠다고 나섰으니 돈 없고, 대기업 부모 없는 청년들은 어떻게 살란 말인가. 정부는 교육·노동개혁을 통해 청년들이 꿈꿀 수 있도록 '신분 상승 사다리' 복원을 서둘러야 한다.
[심윤희 논설위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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